청년의 용기와 노인의 지혜가 만나 새로운 길을 엽니다.
우리는 청노새, 그리고 저는 2025(이공이오)
반갑습니다.
오늘도 어제에 이어 제가 집필한 “아! 대한국인 그들은 누구인가”에서 발췌한 내용을 바탕으로 “다름의 존중”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는 흔히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일 뿐이다”라는 말을 포용과 다양성의 가치로 받아들입니다. 다양한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는 유화적인 접근이 당연한 미덕으로 여겨지곤 합니다. 그러나 이 말의 폐단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은 채 맹목적으로 수용한다면, 심각한 국가적·경제적 낭비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개인 차원에서는 불필요한 에너지 소비로 이어지며, 국가 차원에서는 국력 낭비가 불가피해집니다. 결국, 이 말 속에는 “나는 가난해도 좋다”라는 결론이 기다리고 있음을 모르고 화려한 수사에 현혹되는 위험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1. 개인적 차원: 에너지 소비와 비효율성
모든 의견이 동등하게 가치 있다는 논리는 개인의 사고력을 흐리게 하고, 불필요한 논쟁과 에너지 소비를 초래합니다.
(1) 결론 없는 논쟁과 시간 낭비
“다른 것일 뿐”이라는 사고방식은 건설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논쟁을 지속시키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생산적 토론이 아니라 감정적인 대립이 격화되면서, 개인은 불필요한 스트레스와 에너지를 소모하게 됩니다.
(2)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는 회피적 태도
세상에는 분명히 옳고 그름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틀린 것이 아니다”라는 논리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과정 자체를 회피하게 만듭니다. 이는 결국 개인이 비효율적인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며, 장기적으로 발전을 저해합니다.
2. 국가적 차원: 국력 낭비와 쇠퇴
국가 차원에서 다양한 의견을 무조건 포용해야 한다는 논리는 오히려 국력 낭비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효율성과 경쟁력을 중시해야 하는 국가 운영에서, “다름”을 무조건 인정하는 것은 오히려 쇠퇴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1) 정책 결정의 비효율성
국가는 한정된 자원과 시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장 효율적인 정책을 신속하게 결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의견이 동등한 가치를 가진다”는 사고방식이 팽배하면, 정책 결정 과정이 불필요하게 길어지고, 국가적 역량이 낭비됩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원자력 발전 논쟁을 살펴보면, 과학적으로 안정성이 검증된 원전을 지속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유리함에도 불구하고, “원자력은 위험하다”는 감성적 주장도 동등하게 존중받으며 정책이 흔들려 왔습니다. 결국, 국가적 에너지 전략이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면서 전력 생산 비용이 상승했고, 이는 경제적 부담으로 이어졌습니다.
(2) 국가 경쟁력 약화
국제사회에서 국가 간 경쟁은 매우 치열합니다. 국력은 단순한 군사력만이 아니라, 경제력, 기술력, 정치적 결속력을 포함합니다. 하지만 “다름”을 지나치게 존중하는 사회에서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단결하는 것이 어려워집니다.
역사적으로 강한 국가들은 공통된 목표를 향해 조직적으로 움직였습니다. 반면, 내부의 다양한 목소리가 과도하게 존중받으며 국가가 하나의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경우, 쇠퇴의 길을 걸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멸망 또한, 내부의 다양한 세력 간 갈등과 국력 분산이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3. 다양성의 충돌은 “나는 거지가 되어도 좋다”라는 결론이 기다리고 있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비효율성과 낭비가 발생하면 결국 국가와 개인 모두 “나는 거지가 되어도 좋다”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습니다.
효율적인 결정을 내리지 못하면, 생산성이 떨어집니다.
경제적 낭비가 증가하면, 부를 축적하기 어려워집니다.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면, 국가는 쇠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개인은 피로감을 느끼고, 국가는 발전의 동력을 잃게 됩니다.
올바른 선택을 위한 기준이 필요하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일 뿐”이라는 말은 때로는 유용할 수 있지만, 이것이 무조건적인 진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회와 국가는 옳고 그름을 분명히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세워야 함에도 TV토론을 보면 결론없이 소모전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국민적 에너지 낭비이며 경제 손실입니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찬성과 반대의견에 같은 의미를 부여함으로서 시청자가 오해할수 있도록 유도하는 행위는 재고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화려한 수사에 현혹되지 않고, 국가와 개인 모두가 현실적인 판단을 통해 사회 발전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저의 저서 “아! 대한국인 그들은 누구인가”에서 발췌한 내용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2025(이공이오), 다음 시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