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용기와 노인의 지혜가 만나 새로운 길을 엽니다
우리는 청노새, 그리고 저는 2025(이공이오)
반갑습니다.
오늘은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 소설 중 하나인 오셀로 (Othello)에 대해 이야기 하겠습니다.
오셀로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로 치부될 수 없습니다. 이 작품은 질투와 의심, 그리고 조작이 어떻게 인간을 파멸로 이끄는지를 그린 정치적 비극입니다. 무어인 장군 오셀로는 백인 여성 데스데모나와 사랑에 빠져 결혼합니다. 그의 부하 이아고는 오셀로에게 진급에서 밀린 것에 불만을 품고, 질투와 의심을 유도하여 그를 파멸로 몰아갑니다.
이아고는 데스데모나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운다는 거짓 정보를 조작하고, 이를 믿은 오셀로는 아내를 살해합니다. 진실을 알게 된 후 오셀로는 자책하며 자결합니다.
이 비극은 단순히 사랑에 얽힌 이야기만을 다루지 않습니다. 오셀로는 인간이 겪는 가장 치명적인 감정, 즉 질투가 어떻게 타인을 파괴하고, 결국 자신까지도 파멸에 이르게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 비극이 21세기 대한민국 정치에서 반복적으로 재현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국 정치에서도 항상 '이아고'와 같은 인물들이 존재합니다. 그들은 외견상 충성스럽고 유능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권력에 대한 욕망과 분노, 질투로 가득 찬 인물들입니다. 이들은 여론을 조작하고, 사실을 왜곡하며, 상대방에 대한 불신과 의심을 부추깁니다. 그 과정에서 정치 지도자는 대중의 신뢰를 얻고 있지만, 내부의 불안을 해결하지 못한 채 점차 파멸의 길로 접어듭니다.
한국 정치의 현실은 오셀로의 이야기와 유사합니다. 정책보다 중요한 것은 심리전, 프레이밍, 선동의 기술이 되어버렸습니다. 팩트보다 감정이 우선시되고, 진실보다는 조작된 내러티브가 더 강력한 영향을 미칩니다. 언론과 SNS는 이아고의 손에 쥐어진 손수건처럼 특정 메시지를 사람들의 감정에 맞게 조작하는 도구가 됩니다. 결과적으로 대중은 데스데모나처럼 억울하게 희생당하고, 지도자는 진실이 드러날 때 스스로를 무너뜨리게 됩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비극이 반복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멈추려는 ‘시민의 이성’은 그리 강력히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각 진영은 '우리 오셀로'를 지키기 위해 더 큰 이아고를 만들어내고, 더 교묘한 거짓을 용인하며, 또 다른 질투와 조작의 정치를 정당화합니다. 결국, 진실을 향한 싸움은 소모적이고, 정치적 대립은 더욱 격화됩니다.
셰익스피어는 오셀로를 통해 “질투는 스스로 낳고, 스스로를 먹고 파멸하는 괴물”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오늘날 한국 정치도 이러한 괴물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정치적 충돌과 이념적 대립을 넘어, 사실과 진실을 바탕으로 한 건설적인 논의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정치의 중심은 이제 권력의 싸움이 아니라, 진실과 이성, 그리고 검증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사회적 대화로 전환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파멸의 반복을 멈추고, 정치적 지도자들 역시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또 다른 오셀로와 또 다른 이아고의 비극을 반복해서 지켜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교훈을 바탕으로, 우리는 더 이상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진실을 중시하는 정치적 문화를 형성해야 할 때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이 비극을 반복하며, 그로 인한 파괴적인 결과를 맞이할 것입니다.
우리는 청노새, 그리고 저는 2025(이공이오)
다음 시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