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용기와 노인의 지혜가 만나 새로운 길을 엽니다
우리는 청노새, 그리고 저는 2025(이공이오)
반갑습니다.
오늘은 "더불어 사는 품격"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느 숲속, 평온하던 초식동물 무리에서 한 마리가 실수로 길을 벗어납니다. 잠시 한눈을 판 것일 수도 있고, 본능처럼 반응한 결과일 수도 있지요. 이것을 기다렸다는 듯 숨어 있던 사자가 달려듭니다. 실수를 돌아 볼 틈도, 고민할 시간도 없이 사자는 바로 목을 물어버립니다.
놀랍게도, 이 광경은 오늘 우리가 사는 SNS라는 정글에서도 되풀이됩니다.
어쩌다 실수로 올린 글 하나. 삭제하고 싶어도 지워지지 않습니다. 캡처는 이미 퍼졌고, 그 순간 ‘숲속의 사자들’이 몰려듭니다.
“정치 이야기는 여기에 올리지 마세요.”
“여기 색깔과 안 맞습니다.”
“왜 이런 데서 정치 이야기를 하죠?”
“그런 말 하려면 나가세요.”
누군가는 무심코 올린 글이나 실수로 잘못 올린 글임에도 이유를 묻지도 않고 어느새 그는 사냥감이 되어 있습니다.
이제 비판은 공감 없는 명분이 되었고, 공격은 취미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사실과 맥락이 아니라, ‘틀렸다’는 명분입니다.
실수는 곧 ‘기회’입니다.
정의를 가장한 완장을 차고, 도덕의 칼날을 휘두를 수 있는 순간.
그 완장은 정의의 표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권력을 가장한 욕망입니다.
공자는 『논어』에서 “군자는 남의 허물을 들추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누군가의 허물이 보이면 달려들 준비가 돼 있습니다.
그 허물을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기회로 여기고, 정의의 가면을 쓴 채 혀를 날카롭게 세웁니다.
정치는 삶입니다. 삶을 말하는 공간에서 정치 이야기를 배제하라는 말은 곧, 생각을 하지 말라는 뜻과도 같습니다.
정치를 이야기하면 “색깔이 있다”는 딱지가 붙습니다.
그러나 정치 없는 삶은 없습니다.
물가, 교육, 복지, 전쟁, 기후 위기… 모두 정치의 결과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말합니다.
“여긴 그런 얘기하는 곳 아니에요.”
“분위기를 아십시요.”
“이런 얘기는 조용히 하시죠.”
정치는 금기가 되었고, 침묵은 미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공동체란, 의견이 다르더라도 같이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가진 공간입니다.
공감은 침묵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존중하는 태도에서 자라납니다.
심리학자 애덤 그랜트는 말했습니다.
“공감은 본능이 아니라 훈련된 태도다.”
우리는 서로의 실수를 통해 배우고, 말실수에도 귀 기울이며, 공동체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SNS라는 숲은 결국 모두가 사자이거나, 모두가 먹잇감인 정글로 남을 것입니다.
완장은 힘이 아닙니다. 완장은 책임입니다.
누군가의 실수를 비난할 자유는 있지만,
그를 품고 다시 함께할 용기가 없다면,
우리는 모두 디지털 숲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게 될 뿐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격할 권리가 아니라,
함께할 품격입니다.
우리는 청노새, 저는 2025(이공이오)였습니다.
다음 시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